default_setNet1_2

[아침을 열며] 반려동물의 주검이 준 트라우마

기사승인 2017.08.14  

공유
default_news_ad1

- 이상호 천안 아산 경실련 공동대표

   
▲ 이상호 천안 아산 경실련 공동대표

반려동물을 사랑하려면 그 주검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주검은커녕 애지중지하다가 버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구역질과 욕설이 나온다. 

 
나는 최근 충청신문에서 참 반가운 기사를 읽었다. 8월7일부터 9일까지 3회에 걸쳐 특집으로 다룬 ‘반려동물 1000만 시대에 늘어나는 유기 동물의 문제와 대책’에 관한 기사였다. 지난해 구조한 유기동물은 9만여 마리이며, 이는 그전해보다 9.3%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구조되지 못한 동물까지 합치면 엄청날 것이다. 이는 동물 유기가 점점 심각해진다는 이야기다. 이 기사가 우리사회에 골칫거리로 등장한 동물 유기의 근절을 알리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하고,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경각심과 윤리적 책임 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난 사실, 동물을 특별히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동물은 그냥 동물일 뿐이며 동물을 가장 사랑하는 길은 동물 본성대로 살도록 두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내가 위의 특집 기사를 매우 반갑게 읽은 이유는, 내가 겪은 참혹한 경험 때문이다. 그 경험 후로 난 동물 유기에 대해 매우 민감해졌으며, 가끔은 반려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의심하기도 한다. 
 
난 5년째 조그만 밭에 농사를 짓고 있다. 농장에는 고추, 상추를 비롯한 갖은 채소와 열매 맺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농장은 차량이 많은 4차선 도로와 접해 있으며, 다른 쪽 옆으로는 농로가 있어 차와 농기계가 드나들 수 있다. 농로 한쪽 옆으로 농수로가 있고, 농어촌공사에서 설치한 농업용수 펌프장도 있다. 농수로 쪽과 펌프장 주변, 4차선 도로에서 농수로로 진입하는 밭 반대쪽은 여름이면 항상 풀로 덮여 있었다.
 
작년 여름이었다. 4차선 도로에서 농로로 진입하는 농수로 쪽 길가 풀 섶에 조그만 박스 하나가 있었다. 가끔 논에 농약을 치는 사람들이 물을 길러 왔다가 농약병 박스를 두고 가는 일이 있어 그냥 지나쳤다. 일주일쯤 지난 비 온 후 햇살 좋은 어느 날 오후, 버려진 박스가 의심스러워 지나가는 청소차들이 가져가도록 하기 위해 정리를 하려다가 구역질나는 엄청난 일을 겪었다. 박스 안에는 죽은 고양이 시신이 썩어가는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차마 만질 수가 없었다. 악취도 났다. 어떻게 하랴. 다시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삽으로 그 박스를 들고 길에서 떨어진 언덕에 묻어 주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재작년에는 강아지였다. 그때는 일찍 발견한 데다 주인이 겁이 나서 그랬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묻어주었다. 그러나 작년에는 정말 분노가 치밀었다. 페이스북에 ‘동물을 사랑하려면 그 주검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글도 올렸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속이 울렁거리고 분노가 치민다. 
 
연이어 두해동안 그런 일을 겪고 난 후 난, 4차선도로와 마주한 농로 주변에 또 반려동물 사체를 유기할까 두려워 신경이 곤두선다. 작년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농장 주변 길가의 풀을 예초기로 깎고 제초제를 치고 하여 깨끗하게 만든다. 진입로로 들어오는 길목에 청소도 한다. 그 일은 양이 많아 매우 고되다. 그래도 일년에 두 차례는 한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는 ‘왜 힘들게 밭도 아닌 엉뚱한 곳에 힘을 쏟느냐’고 나무란다. 그러나 그 풀을 깎고 청소하는 것에 투자되는 고단함보다 그때 겪은 박스 안의 애완동물 주검이 주는 트라우마가 더 크기 때문이다. 올해는 아직까지 그런 일이 없어 다행이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허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동물을 사랑하는 일을 누가 탓하랴. 힘들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반려동물은 엄청난 위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하려면 끝까지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산채로 혹은 시체를 유기하는 일을 없어야 한다. 그것은 반려동물을 기를 자격이 없는 파렴치한 행위이다. 
 
여가·명상, 자연과의 조화, 공존이 지닌 가치와 유용성을 몸소 체험하며 콩고드 작은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수필집 ‘월든: 숲속의 생활 Walden;or, Life in the Woods’(1854)에서 “아무리 야생적인 동물이라 하더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편한 것과 따뜻함을 사랑하며, 그것을 얻으려고 충분히 마음을 쓰기 때문에 겨울을 지낼 수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 
 
그렇다. 동물도 감정과 눈물이 있다.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일은 사랑하는 가족을 유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죄악이다. 그러려면 아예 기르지 말아야 한다. 이즈음에 충청신문의 반려동물 유기 문제와 관련된 기사가 잔잔한 사회운동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면 나의 트라우마도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이상호 천안 아산 경실련 공동대표

충청신문 dailycc@dailycc.net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top